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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자연사박물관의 상세한 내용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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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석 관장명감 [그저 일만 하다간 사람 계룡산자연사박물관, 이기석]
이름 : 최고관리자 | 작성일 : 2015.08.28 18:13 | 조회수 : 14880
윤태석 관장명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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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그저 일만 하다간 사람 계룡산자연사박물관, 이기석

윤태석

교황 바오로 6세 알현(1973년, 로마 교황청)



청운(靑雲) 이기석(李紀奭) 선생은 1923년 1월 17일에 충청남도 청양군 운곡면 칠갑산자락의 작은 농촌마을에서 태어났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서 가장의 무거운 짐을 미리 지게 된 21살 위의 형은 근검절약에 성실함까지 갖춰 모든 면에서 동생 기석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기석은 몸이 아파도 의료혜택을 받지 못해 고통받기 일수이던 고향 사람들을 보면서 막연하게나마 의사가 되고자 마음먹게 된다. 총명하고 공부하기를 좋아했던 기석은 당시로서는 엘리트 코스와도 같아 수재들이 모여들던 이리공립농림학교 수의과에 그것도 장학생으로 당당히 합격하게 된다. 

같은 과(科) 1년 선배이며 훗날 시 <파랑새>로 잘 알려진 시인 한하운(韓何雲, 1919-75)은 기석에게 문학과 문화를 이해하게 하는데 적지 않은 영향을 주기도 했다. 이미 어려운 생활이 몸에 밴 채 학업을 마친 기석의 대학진학 포기는 어쩌며 당연한 것처럼 보였다. 우수한 학업성적은 여기서 멈출 수밖에 없는 현실을 오히려 방해하는 거추장스러운 것에 불과했다. 고교졸업 후,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의 앞날을 아스라한 파고에 올려놓은 것 같은 긴 방황은 아무리 찾아도 원망의 대상조차 없었기에 그나마 그 끝도 긍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방황의 막다른 길에는 독학이라고 하는 도피처만이 기석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시작한 공부로 기석은 마침내 수의사 자격증을 취득하게 된다. 이후 도청에서 수의사로 일을 하게 된 기석은 사람이 아닌 동물의 치료만으로는 어릴 때 꿈꾸던 의사의 보람을 느끼는 데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다시 의사검정고시 준비를 시작한 기석은 주경야독, 마침내 안과의사시험에도 합격하고야 만다. 5년여간 입었던 수의사 가운을 벗고 기석은 1947년 충남도립대전의원에서 새내기 의사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3년 후 발발한 6·25로 군의관에 차출된 기석은 전장에서 숱한 우여곡절을 겪게 되는데, 이때의 경험은 훗날 이웃을 위한 봉사의 중요성을 알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군 현역에서 예편한 후 친절과 봉사, 깨끗한 병원, 환자 본위의 진료를 목표로 1956년 대전에서 이안과 병원을 개원하게 된다. 이 무렵 책을 통해 본 헬렌 켈러(Helen KELLER, 1880-1968)의 삶은 기석에게 사회공헌을 실천하게 하는 큰 계기가 되었다. 의술은 인술이라는 각오로 20년 동안 지역주민을 위해 헌신해 오면서 국제라이온스활동과 영세민을 위한 개안 수술 등 틈나는 대로 크고 작은 봉사활동에도 참여했다. 이때는 이미 병원이 매우 안정적으로 운영되어 여유가 있을 때였다. 자연스럽게 독자적인 공헌활동을 찾게 된 기석이 선택한 것이 교육사업이었다. 이렇게 해서 1977년 그의 아호를 딴 청운학원이 설립되었고 이듬해인 1978년 이사장 취임과 함께 제1기 신입생을 맞게 되었다. 이것이 지금의 대전보건대학교이다. 한편 이기석은 어느 해인가 의료 관련 국제학술회의에 참여하게 되는데 이때 듣게 된 “노벨상은 자연사박물관의 수에 정비례한다.”는 어느 해외석학의 발표가 기석에게 깊은 여운을 주었다. 자연사박물관에 관심을 두게 되는 실질적인 동기를 갖는 순간이었다. 




의료봉사 중인 이기석선생


특히, 21세기는 자연, 과학, 문화, 예술이 앞서지 않으면 절대로 선진국이 될 수 없다는 자연과학계의 보편적인 인식은 기석으로 하여금 자연, 과학, 문화, 예술 대중화의 센터가 자연사박물관이라는 선각자적인 생각을 갖게 했다. 더구나 지금까지도 그렇지만 국립자연사박물관 조차 없는 우리의 현실을 감안할 때 이기석의 생각은 단호했다. 마음을 굳힌 이기석은 바로 준비에 들어갔다. 우선 박물관에 관한 전문지식을 쌓고자 서울까지 오르내리며 국립중앙박물관 특별강좌를 수강했고, 어려운 여건에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정성을 다해 유물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국제라이온스회원 계룡산자연사박물관 방문


어느 정도 준비가 되자 재단법인 청운문화재단을 설립하여 본격적으로 자연사박물관 건립에 착수하게 된다. 이때 박물관을 계룡산국립공원 안인 학봉리(鶴峰里)에 자리하게 된 것은, 당시 이 지역이 문화예술 교육민속 취락지구로 지정되어 있었기에 박물관이 여기에 있으면 충청남도에도 도움이 되고 대전지역 학생들도 접근하기 좋을 것이라고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인식의 차이로 인한 일부 환경단체와의 7년 여의 갈등은 “자연사박물관은 자연의 환경에 대해 수집, 조사, 연구, 교육하는 공간이기에 국립공원 계룡산의 환경보존에도 크게 득이 될 것이다. 따라서 여기에 많은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라고 강변했던 이기석의 생각이 어필되면서 마침내 2004년 초 가을에 계룡산자연사박물관은 역사적인 개관을 맞게 되었다. 이와 함께 박물관과 상호 시너지를 확대하고 전문인력 양성과 연구를 보다 체계화하기 위해 대전보건대학교 내에 우리나라 최초로 박물관학과와 박물관연구소를 설립하였다. 이 역시 순전히 개인의 의지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이기석 선생의 선구자적인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일본인 관람객들에게 전시설명하는 이기석 선생


그렇게 해서 계룡산자연사박물관에는 자연과학사의 전 영역을 포괄하는 30만 여점의 방대한 자료가 수집되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떠난 지금도 우주와 인류의 역사를 증거하며 박물관의 당당한 주인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기석 선생은 늘 근면했다. 새벽 3시에 일어나 보문산(寶文山, 대전에 위치)으로 산책을 나갔고, 국선도를 통해 마음의 평정과 몸의 건강을 유지하고자 했다. 일찍 조찬을 마치고 6시 30분부터는 어김없이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안과 의사로 있을 때는 병원에서, 박물관을 연 뒤부터는 박물관에서 똑같은 일과를 소화했다. 병원과 학교의 일선에서 물러난 후로는 박물관에 주력하였고 늘 박물관만을 생각했다.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그는 연중 하루도 쉬지 않고 주어진 일에 열정과 사랑으로 온 정성을 다했다. 1981년 위암 수술과 박물관 건립 때에 겪었던 환경단체와의 긴 갈등 등을 이겨낼 수 있었던 버팀목은 그리스도의 사랑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각고의 노력으로 박물관이 문을 연 지 만 1년 만인 2005년에 숙환으로 별세하고 만다. 그리고 금년 9월은 벌써 그가 타계한 지 만 10주기가 되었다. 



계룡산자연사박물관 전경


일제강점기, 그 고통의 시기에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타고난 끈기와 근면함으로 의학, 과학, 자연과 문화 등 사계(斯界)는 물론 봉사 부분 등에서도 큰 족적을 남긴 선생은 생전에 “내가 죽으면 작은 묘석에 ‘그저 일만 하다가 노라’ 라고만 쓰라.”고 했다고 그의 큰 자부(子婦)이며 박물관장인 조한희 관장은 회고했다. 스스로 박물관적인 삶을 살다 그가 생전에 가장 아꼈던 학봉장군미라와 같이 그도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많은 것을 간직한 채 박물관으로 돌아갔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그리고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것’ 그것은 분명히 ‘숭고(崇高)’일 것이다.



- 청운 이기석(1923-2005 ) 충남 청양 출생. 이리공립농림학교 졸업(1941), 연일정씨(延日鄭氏) ‘수용’과 결혼(1945)하여 3남 2녀를 둠. 조선의사시험 합격(1946), 충남도립대전의원 의사(1947) 역임. 육군군의관 복무(중령 예편)(1950-56), 이안과 병원 설립·개원(대전시 동구 중동)(1956), 안과 전문의시험 합격(1957), 국제라이온스협회장(MEMBERSHIP KEY, KEY AWARD, ADVANCEMENT KEY 등)(1963-69), 가톨릭대 의과대학대학원에서 의학 박사학위 취득(1967), 교황 바오로 6세 알현(로마 교황청)(1973), 각각 영세민 무료 개안수술로 대전시장 및 대한적십자 충남지사장 감사패(1975·76), 학교법인 청운학원 설립(78년 이사장에 취임)(1977), 충남시민문화상 봉사부문 금상(1985) 수상, 국립중앙박물관 박물관대학 수료(1991), 대전보건대에 국내 최초로 박물관학과 및 박물관학연구소 개설(1992). 

SBS 사회봉사부문 대상(1993), 청운문화재단 설립(이사장 취임)(1997), 의료법인 청운의료재단 이안과 병원 개설(2000), 계룡산자연사박물관 개관(2004), 국제보건공로훈장(일본문화진흥회)(2005), 세계평화링컨대상(링컨세계평화재단)(2005), 2005년에 타계, 대전시민대상 화합장 (2005), 자랑스런 충남인상 추서, 황희문화예술대상(2008) 추서, 자랑스런박물관인상 특별공로상(2015), 한국박물관협회 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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