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자연사박물관 조한희 관장을 만나다


고(故) 이기석 박사의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내내 눈이 촉촉이 젖는 조한희(53) 관장. 그녀에게 이기석이란 이름은 시아버지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 박사의 권유로 박물관학을 공부하게 되었고 그와 함께 ‘계룡산자연사박물관’ 건립을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대며 고민했다. 고(故) 이기석 박사는 그녀에게 시아버지 이자 삶의 지표 이었으며 줄곧 ‘동지’였다.

“일평생 이웃을 위한 봉사로 헌신하며, 검소와 근면을 신조로 살아오셨던 그 분을 생각하면 슬픔과 아쉬움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제게는 지금도 항상 곁에 계신 것 같이 느껴집니다.” 박물관 설립자인 고(故) 이기석 박사는 과학적 소양이 풍부한 민족임에도 과학문화에 대한 인식 부족을 항상 안타깝게 생각했다. 과학문화를 확산하여 후대에게 자부심과 긍지를 갖게 하기 위해 우선 박물관건립에 강한 집착을 보였다. 박물관의 슬로건을 “재미있게 저절로 배우는 박물관”으로 정한 것도 ‘과학문화 확산의지’ 에서 비롯되었다. 보여주는 전시가 아닌 체험하며 공부하는 박물관, 감동을 주는 박물관을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유명한 안과의였던 시아버지. 그가 모은 재산을 사회로 환원한다는 뜻에서 박물관을 건립했다. ‘계룡산자연사박물관’ 건립은 주위에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조한희 관장을 10여 년간이나 외국에서 박물관 공부를 시켰을 정도로 박물관 운영에 심혈을 기울였던 고(故) 이기석 박사의 뒤를 이어 2대 관장으로 취임한 며느리 조한희씨. 아직도 무슨 일만 있으면 중얼거리듯 이런 말이 튀어 나온단다. “아버님, 이건 어떻게 할까요?”

착하고 지혜로운 남편, 사랑하고 존경하는 시아버지

남편은 어떤 분이냐고 물으니 한마디로 “착하고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한다. 현재 자원재활용 기술개발사업단 단장인 이강인(55세)씨가 그녀의 부군이며 “계룡산자연사박물관’의 이사장이다. ‘결코 화내는 법이 없고 직접적이고 강한 표현을 자제하여 상대방에게 ‘기분 좋은 이해’를 끌어내는 사람” 이라고 부군을 소개한다. “원만하고 부드럽게 본인이 원하는 바를 얻어내는 지혜로운 사람이 바로 내 남편입니다.” “서울대와 이대 재학 중에 만났으니 연애결혼이겠네요?” 하고 묻자 30년 가까운 과거 일을 얘기하며 수줍어한다. “남편이 군대 갈 때까지도 그에 대한 내 마음을 전혀 몰랐어요. 그가 군대 간 후에야 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먼저 편지를 썼지요.”

조 관장의 시아버지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 “시아버지의 호 청운(靑雲)을 따서 앞으로 모든 교육프로그램이나 행사의 명칭에 사용하겠다.”고 말할 정도이다. 이야기 내내 줄곧 박물관과 시아버지를 번갈아 가며 ‘자랑 타령’을 늘어놓는 조 관장. 참 맑고 순수한 중년이다.


감을 좋아했던 '시아버지' 사과를 무척 좋아하는 '나'
"그래서 '감사의 날'을 만들었지요"

“아버님과 제가 만들어 놓은 날(日)이 있어요. 나는 사과를 좋아하고 시아버님은 감을 좋아해 11월 1일을 ‘감사의 날’ 로 정했답니다. 그날 감과 사과 빛인 빨간색 옷을 입고 오는 사람에게는 박물관 입장료를 50% 할인해 주고 또 선물로 사과와 감도 푸짐히 드려요. 재미있죠?” 라는 얘기를 서두로 박물관에서 진행 중인 단오 때의 ‘사랑의 날’, ‘흥부 놀부의 박타는 날’ 등 시아버님과 함께 만든 ‘박물관 특별 기념일’에 대한 사연을 소개한다. “시아버님과는 아주 특별한 인연인 듯해요” 하며 눈물을 글썽이며 말을 잇지 못하는 조한희 관장.

“평생 남을 진료하며 봉사활동도 게을리 하지 않으셨어요. '하느님이 주신 재능을 결코 쉬게 하고 싶지 않다'면서 목숨이 붙어있는 날까지 그 재능을 아낌없이 사용하셨어요. 그렇게 살다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시아버지 공룡 '청운(靑雲)이’ 골격의 85%가 진품'
세계 최고 신이나 설명하는 그녀, 천상 '박물관여인'

박물관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1억 4천만 년 전에 살았던 초식공룡 ‘청운이’ 의 모습이다. 길이 25m, 높이 16m에 이르는 거대한 용각류 공룡이다. 미국의 와이오밍 주에서 미국 캔자스 대학팀과 청운문화재단에 의해 발굴되어 대전보건대학 팀이 국내에서는 최초로 처리한 공룡표본이어서 더욱 의미가 있다. 골격의 진품이 85% 정도로 용각류 공룡 중 세계 최고이며 서 있는 조립 공룡 중 세계에서 3번째로 크다.

‘청운이’ 발굴당시 육식공룡인 알로사우르스의 이빨이 청운이의 어깨 부분에서 발견되어 ‘덤’으로 알로사우르스의 표본까지 얻은 셈이라며 이야기 하면서도 그때의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아마도 이것이 이미 만들어진 내 길인가 봐요. 그러니까 그런 행운이 내게 찾아왔죠. 이 이빨 좀 보세요. 톱니처럼 얼마나 촘촘하고 날카로운지...” 설명을 하는 그녀는 마치 신이 나 있다. 박물관 전시물들을 자랑하는 조관장의 눈빛은 방금 소풍 나온 아이처럼 순수하고 쾌활했다.

전 세계적으로 초식공룡과 육식공룡이 한자리에서 발굴된 사례도 없단다. “이렇게 한 자리에 배치를 해 놓은 것도 우리 박물관이 세계최초예요.” “무엇을 하든 세계최초. 세계최고이고 싶어요.” 전시되어 있는 전시물, 앞으로 들여올 것들, 그리고 박물관에서 갖는 각종 경연대회까지 모두 ‘세계화’ 하고 싶다는 조 관장. 천상 ‘박물관 여인’ 이다.

"이 길은 미리 예비된 나의 길"

박물관은 가장 신뢰받는 교육기관, '재미있는 삶'의 원동력이어야

전 세계 최고의 자연사박물관을 만들고야 말겠다는 그녀. 저렇게 아담한 체구에서 어쩜 저렇게 야무지고 당찬 의지가 나올까. 아마도 시아버지가 남겨준 ‘선물’ 때문일 것이다. 바로 며느리에 대한 끊임없는 믿음. ‘믿음’ 이라는 선물의 힘일 것이다.

조관장은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의 예를 들면서 열변을 토한다.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은 제임스 스미손의 50만 달러 기부금으로 만들어 졌습니다. 대다수의 세계적인 자연사박물관들은 설립은 개인으로부터 출발했으나 국가에서 지원하고 박물관을 위해 기부하는 문화가 일반화 되어 있습니다. 미래를 위해 적은 액수라도 기부하는 그런 문화가 정말 부럽습니다."

"박물관은 미래의 재산"이라고 말하는 조 관장. "선진국에서 가장 신뢰하는 교육기관이 바로 박물관"이라며 미국의 경우 "연간 박물관을 찾는 사람 숫자가 프로농구 전체 관람객보다도 더 많다"는 얘기도 덧붙인다. "훌륭한 문화와 역사가 있는데도 우리나라가 아직 부족한 이유는 박물관에 가본 경험이 적은 민족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각하는 대로 된다고 했습니다. 계속 세계최고, 최초를 희망합니다. 또한 우리의 훌륭한 문화를 알리는 일이 저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버님이 그랬던 것처럼 제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박물관과 우리 문화의 가치를 알리는 데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박물관’ 이 미리 예비된 자신의 길이라고 말하는 조 관장. 맑고 순수한 영혼이 발산하는 에너지를 가득 품은 매력적인 여자이다.

송 윤 아 기자 (대전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