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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과의 하룻밤 - 계룡산자연사박물관

홍대길의 과학여행수첩 (7)
태극기가 달나라에 다녀왔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문을 표시하겠지만, 국립중앙과학관에 전시돼 있는 엄연한 사실이다. 과학여행수첩은 이처럼 상식을 뛰어넘는 과학유산과 전시물들을 발굴해 소개하는 새로운 여행기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격려를 부탁드린다. [편집자 註]


여행의 참맛은 길을 묻는 데서 느껴진다. 성배를 찾아 나서는 사람이라도 된 양 지도를 보고 더듬기를 몇 번. 그래도 미심쩍으면 들일을 나가는 농부나 하굣길인 초등학생과 눈을 맞춰 발길을 멈추게 한다. 햇빛에 그을려 자두처럼 반질한 얼굴과 낯선 사투리는 생전 와 보지 못한 곳을 여행하고 있음을 다시 확인시켜 준다. 요즘에는 지도가 잘 되어 있고, GPS도 있어 길맹이 아니라면 길 찾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래도 길을 묻을 때 뜻하지 않은 여행정보를 얻는다.

계룡산자연사박물관(www.krnamu.or.kr)을 찾아가려면 호남고속도로 유성IC에서 빠져 나와 공주와 계룡산 방면으로 꺾어 들어 대전국립현충원을 지나야 한다. 그 다음 박정자 삼거리를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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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기슭에 자리잡은 계룡산자연사박물관 전경.  ⓒ

박정자 삼거리. 음식점이나 가게 이름인 줄 알고 둘러보는데, 어딜 봐도 그런 간판은 보이질 않는다. 다만 삼거리에 작은 표지가 있을 뿐이다. 옛날 이곳에 지역 토박이인 박씨들이 나그네를 위해 지은 정자가 있었다는 사실은 물어서 안 이야기이다. 계룡산에 도적이 들끓던 시절 고개를 넘는 사람들이 모여갈 수 있도록 배려했던 것이다. 지금은 300년 묵은 느티나무만이 삼거리에 우두커니 서서 길안내를 맡고 있다. 국립현충원에서 박정자 삼거리까지는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그리고 동학사 방향으로 좌회전하면 곧바로 오른쪽 산기슭에 계룡산자연사박물관이 있다.

계룡산자연사박물관에 들어서면 쥐라기나 백악기 시절로 돌아간 모양 수백 마리의 공룡들이 숲 사이에서 뛰어논다. 공룡들과 어울려도 한나절은 걸릴 것이다. 시야가 확 트인 곳에 앉아 아이들에게 공룡 이야기를 들려주며 도시락을 까먹는 가족들도 눈에 띈다.

박물관 건물에 들어서기도 전 눈길을 빼앗은 것이 있다. 뉴턴의 사과나무이다. 17세기 중반 케임브리지대학에 다녔던 아이작 뉴턴은 영국에 흑사병이 돌자, 고향인 울스드롭에 내려가 사색과 실험을 즐겼다. 그때 뉴턴에게 만유인력 법칙의 영감을 준 것은 익어도 푸른색을 잃지 않는 영국산 사과나무였다. 뉴턴의 사과나무는 접목을 통해 자손을 남겼는데, 한국에도 찾아왔다. 그 중 하나가 이곳 박물관에서 새 뿌리를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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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턴의 사과나무.  ⓒ

뉴턴의 사과나무 옆에는 스트로마톨라이트라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화석이 있다. 35억년 전 지구상에 생물이 어떻게 출현했는지를 알려주는 열쇠이기도 하다. 바위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동그란 줄무늬들이 보인다. 시아노박테리아가 만들어낸 무늬이다. 이 원시 미생물은 햇빛과 물과 탄산가스로 광합성을 함으로써 지구상에 처음으로 산소를 만들어냈다. 그때 부산물로 생긴 점액질의 탄수화물은 물속의 부유물과 결합하여 층층이 쌓였다. 그게 화석으로 변해 스트로마톨라이트가 됐다. 수천년이 지나야 1센터미터 정도 자란다는 스트로마톨라이트의 줄무늬를 보면서 생명의 탄생이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지 생각해본다. 우리가 숨 쉬는 산소 속에는 분명 35억년 전 만들어진 산소 분자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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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 출현의 신비를 간직한 스트로마톨라이트.  ⓒ

1층 로비에는 박물관의 가장 큰 자랑인 초식공룡 브라키오사우루스가 긴 목을 빼고서 내려다보고 있다. 몸길이는 25미터, 몸무게는 80톤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골격의 약 85%가 복원돼 세계적으로 완성도가 매우 높은 공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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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연구진들이 발굴한 브라키오사우루스.  ⓒ

이 녀석의 고향은 미국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선정된 옐로스톤이 있는 와이오밍주이다. 1억5천만년 전 쥐라기 후기에 살다가, 2002년 7월 23일 캔자스대학의 래리 마틴 교수팀에 의해 발견했다. 계룡산자연사박물관을 세운 청운문화재단이 발굴비용을 전담하고, 국내 연구진이 발굴에 참여하면서 고향을 떠나 계룡산으로 오게 됐다. 이제는 한반도에 살았을 친구들을 대신하여 청운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청운이의 자세한 발굴 과정과 실제 화석들은 1층 로비에서 확인해볼 수 있다. 청운이의 윗팔뼈, 허벅다리뼈, 어깨뼈 등에 팔과 다리, 어깨를 대어 보았다. 그리고 청운이가 성큼성큼 다가온다고 생각해 보았다.

계룡산자연사박물관은 한마디로 욕심 많은 박물관이다. 전시물들이 너무 많아 하나하나 뜯어보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3층은 인류의 진화와 생명의 탄생, 그리고 암과 같은 질병에 대해 넓은 공간을 할애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마지막에는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의사였던 설립자의 유지가 살아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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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접 만져보고 들어볼 수 있는 운석.  ⓒ

국내 어디서도 보기 힘든 미라가 3층에 있다. 570년 전 조선 초기의 무관으로 종3품 벼슬을 지냈던 학봉장군(이름을 밝히지 말라는 후손들의 요청에 따라 계룡산 봉우리 이름을 따옴)과 그의 증손자의 주검이다. 두 구의 미라는 죽음이란 삶의 종착역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2층으로 내려가면 앞서 진지했던 생각들을 떨치게 하는 화려한 눈요기들이 많다. 할로겐 조명을 받아 빛나는 보석들은 엄마로 하여금 잡고 있던 아이의 손을 뿌리치게 한다. 국가검정 보석감정사 실기시험에 나온다는 108보석, 성경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천국의 12보석, 그리고 다이아몬드와 대형 자수성 앞에서 여자라면 발길을 옮기기가 쉽지 않다. 엄마 손을 놓친 아이들은 신기한 형광광물 앞에 주로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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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빛깔의 보석들을 모아놓은 보석관.  ⓒ

계룡산자연사박물관을 칭찬하고 싶은 게 있다. 자리를 옮겨 동물의 세계에 들어서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다른 박물관과 달리 전시물 앞을 가로막는 유리를 가능한 한 설치하지 않았다. 호랑이, 사자, 곰, 물개 같은 박제들이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느낌은 여기서 생긴다. 바다의 세계를 표현해놓은 어류 디오라마에서도 수족관을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바다 속으로 뛰어든 것 같다.

긴 송곳니를 앞세운 대형 매머드 앞에는 세계적으로 몇 마리밖에 없다는 동굴사자의 뼈가 전시돼 있다. 1만5천년 전 멸종된 동굴사자는 지금의 사자보다 25% 정도 컸다. 몸길이가 30미터에 이르는 흰긴수염고래의 뼈도 보기 드문 전시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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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만5000년 전에 멸종된 동굴사자의 뼈  ⓒ

계룡산자연사박물관은 매년 여름 청운과학캠프를 연다. 1박2일로 치러지는데, 색다른 체험이 끼어 있다. 청운이란 브라키오사우루스 곁에 돗자리를 깔고 하룻밤을 지내는 것이다. 그 밤에 청운이는 1억5천만년 전 자신이 살았던 시절로 캠프 어린이들을 데리고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영화 ‘쥐라기공룡’에서 보았듯이, 인간과 공룡의 만남을 주선할 것이다. 이번 여름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공룡과의 하룻밤을 지내보면 어떨까.

다음 과학여행수첩에서는 ‘대지의 탄생'을 보러 한탄강에 찾아갈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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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동아 기자, 디지털타임스 경제과학부장, 동아사이언스 과학문화연구센터장을 거쳐, 현재 과학 전문 쇼핑몰 '사이숍(scishop.kr)'과 ‘IT월드 정보과학체험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저서로는 ‘아마추어 천문가 길라잡이’, ‘앗, 우주가 나를 삼켰어요‘, ’꿈틀대는 11억 인도의 경제‘가 있다.

/홍대길 (주)사이유 대표  hong@sci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