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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조한희]겨레 슬기 모은 과학관, 체험학습 활용하자
[동아일보] 2008년 02월 16일(토) 오전 02:57 i_pls.gif  가i_mns.gif| 이메일| 프린트 btn_atcview1017.gif
2008021602572254210_060310_0.jpg[동아일보]
해마다 명절이면 한국인들은 힘든 일을 잠시 잊고 놀이 문화에 빠져든다. 온종일 TV와 컴퓨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현대인에 비해 옛 선인들이 즐겼던 놀이는 사시사철 다양하다.

남녀노소 한데 어울려 판을 벌이는 윷놀이에는 확률이, 골목마다 사내 꼬마들이 치고 논 팽이에는 관성의 법칙이 숨어 있다. 유체의 성질을 표현한 ‘베르누이 정리’만 알면 남보다 훨씬 높이 오르는 연을 띄울 수 있다.

놀이마다 각각 과학적 원리가 숨어 있으니, 이미 오래전 놀이에 과학을 결합한 선조의 슬기가 새삼 놀랍다.

먹고 마시고 자는 문화도 과학에 기반을 두기는 마찬가지다. 옷을 쪽과 잿물, 조개 가루로 물들여 맵시 있게 지어 입었고, 겨울에는 보온성이 뛰어난 온돌에서 몸을 녹였다. 발효 현상을 이용해 만든 식해와 김치, 된장, 고추장은 또 어떤가.

그럼에도 그동안 우리는 전통과학을 지나치게 홀대한 감이 있다. 겨레의 슬기보다는 외국의 과학 문명을 더 친숙하게 느끼는 이방인이 되어 버린 건 아닌지 우려가 앞선다.

나 역시 어른들에게 우리는 미신 문화고, 서양은 합리적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다 보니 서양 과학이 우리보다 앞서 있고, 외국제품은 당연히 한국제보다 좋다는 생각에 젖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오랜 세월 쌓여온 과학의 전통을 간과하고 열등한 부분만이 조명된다면 과학기술은 미래를 이끄는 청소년에게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과학문화의 역할이 바로 그런 중심에 있다. 6·25전쟁 직후 극도의 경제 후진국에서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것은 과학기술력과 함께 과학문화의 힘이 컸다.

이제는 잊혀진 우리의 슬기를 되찾아 자랑하고 확산시켜야 할 때다. 세계 최초 철갑선인 거북선, 보존 과학의 극치로 평가받는 팔만대장경, 시간과 절기를 알아내는 오목해시계와 1000년 이상 보존이 가능한 한지 제조법은 익히 알려진 우리의 과학 명품이다. 먼저 이런 과학기술의 전통을 미래 기술로 이어가는 창의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우리의 과학문화는 전환점에 서 있다. 특히 사회 구성원들에게 과학문화를 중시하도록 그 지지기반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그 점에서 과학관이 활성화돼야 한다. 과학관이 본연의 기능과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때 과학문화의 보급과 확산은 좀 더 용이해질 것이다. 과학기술에 대한 부정확한 정보의 확산도 과학관이 제 몫을 다한다면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 청소년의 이공계 기피 현상도 잘못된 과학문화의 확산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본다.

과학문화의 확산 거점이자 시작점인 과학관을 소홀히 운영하는 것은 깨진 독에 물 붓는 것과 다름없다. 과학적 전통과 과학에 대한 바른 이해, 이를 향유하는 사회의 애정이 없다면 첨단 연구는 사상누각이 되고 만다.

다시 한 번 한민족이 과학이 몸에 밴 슬기로운 민족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강과 들, 산과 바다, 그리고 아름다운 사계절을 스승으로 삼아 온 점을 상기하자. 우리는 자연에서 지혜를 얻고, 과학과 문화, 예술을 면면히 발전시켜 왔다.

과학관이 그런 전통을 이어받아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열고 지역 과학문화 거점으로서 활동하기를 기대한다.

조한희 계룡산자연사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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